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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에 담긴 장면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감정이 얽힌 복합적인 이야기입니다.
스페인 출신 사진가 요시고(José Javier Serrano)는 이러한 ‘복합성’을 감성적 언어로 풀어내며 전 세계 관객의 감탄을 이끌고 있습니다.
2025년 서울에서 열리는 <요시고 사진전: 끝나지 않은 여행>은 그가 어떻게 여행을 해석하고 시각화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시입니다.
요시고가 사진을 통해 구현한 '여행미학'을 ‘시간’, ‘공간’, ‘감정의 교차점’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탐구합니다.
시간, 찰나에서 영원으로
요시고의 사진 속 시간은 단순히 과거의 순간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의 사진은 찰나의 감정을 영원처럼 머물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낮의 햇살이 벽에 스치는 순간, 누군가의 그림자가 사라지기 직전의 장면, 바닷가에 남겨진 발자국처럼 요시고는 ‘지나간 순간’을 시각적 언어로 고정시킵니다.
이러한 장면은 실제 존재했던 시간을 담고 있지만, 관람객이 그 앞에 섰을 때는 각자의 기억과 맞물려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냅니다.
2025년 <끝나지 않은 여행> 전시에서는 8개의 챕터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사진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입니다.
각 공간마다 아침, 낮, 오후, 해질녘, 밤이라는 시간의 전개가 은유적으로 녹아 있어, 사진 속 풍경이 아닌 시간 속 여정을 걷는 느낌을 제공합니다.
요시고는 시간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방식 자체를 사진에 담습니다.
그의 작품은 단지 ‘기록된 과거’가 아니라, 감정을 소환하고 현재를 다시 구성하는 ‘시간의 재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간, 현실과 상상의 경계
요시고의 사진 속 공간은 낯설면서도 익숙합니다.
우리가 어딘가에서 본 것 같지만,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풍경. 이질적인 구조이지만 편안하게 느껴지는 색감.
바로 이것이 요시고의 공간 미학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도시에서 촬영된 공간들이 등장합니다.
스페인의 해변 마을, 일본의 좁은 골목, 미국의 교외 지역, 서울의 아파트 옥상까지.
그는 이 모든 공간을 요시고만의 방식으로 해석합니다.
시각적으로 단순화된 구성과 밝고 부드러운 색감, 프레임 속 빈 공간들은 ‘공간 속 여백’을 통해 관람객에게 상상의 영역을 열어줍니다.
무엇보다 요시고의 공간 연출은 관람객이 작품 속에 스스로를 투영하게 만듭니다.
이는 사진이 단순히 피사체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나 자신을 상상하게 만드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이번 <끝나지 않은 여행> 전시에서는 공간 연출과 전시장 배치 또한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사진과 공간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는 독특한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만의 감성을 투사할 수 있는 ‘상상의 장소’가 바로 요시고의 공간입니다.
감정, 장면 속 이야기를 꺼내다
요시고의 사진은 감정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절제된 구도와 표현을 통해 관람객 스스로 감정을 찾게 합니다.
그의 사진은 ‘감정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해가 지고 텅 빈 골목을 찍은 사진은 고독과 향수, 동시에 평화로움을 불러옵니다.
다 쓰이지 않은 접이식 의자 하나가 담긴 프레임은 누군가의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암시합니다.
요시고는 감정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감정을 꺼낼 수 있도록 적절한 장면과 구도를 배치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감성적 연출이 더욱 섬세하게 표현되었습니다.
각 섹션마다 음악적 리듬처럼 감정이 진폭을 이루며, 관람객은 자기만의 ‘감정 지도’를 따라 이동하게 됩니다.
특히 ‘THROUGH THE WINDOWS’ 챕터에서는 창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외부 세계를 관망하거나, 감정을 투사하는 방식을 제시합니다.
감정은 시각적 경험과 맞물려 마침내 하나의 이야기로 형성됩니다.
요시고의 여행미학은 결국 ‘감정을 이동시키는 기술’입니다.
그리고 그 기술은 관람객의 마음속 깊은 곳에 닿아, 잊고 있던 기억과 감정을 조용히 흔듭니다.
마무리
<요시고 사진전: 끝나지 않은 여행>은 단순한 사진 감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공간을 이동하고, 감정을 만나는 여행입니다. 요시고는 이 여행에서 우리에게 특정한 목적지를 주지 않습니다. 대신 감각과 기억, 상상 속에서 각자의 여정을 완성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이번 전시는 ‘여행미학’이라는 새로운 예술적 개념을 체험할 수 있는 드문 기회입니다. 지금, 요시고의 감성에 당신의 시간을 겹쳐보세요.